"내 건 줄 알았다"…카페에서 충전기 챙겼다 헌재까지 간 사연[0]
조회:57추천:0등록날짜:2022년10월08일 11시22분
"내 건 줄 알았다"…카페에서 충전기 챙겼다 헌재까지 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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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법알 사건번호 94] 카페 콘센트 꽂혀있던 충전기 가져가면 절도죄일까
지난 1월 제주도의 한 카페에 간 A씨. 콘센트에 꽂혀 있던 충전기를 무심코 챙겼다가 절도 혐의로 검찰 수사까지 받습니다. 검찰은 A씨의 혐의를 인정하고 기소 유예 처분을 내렸는데요. 이 결과를 납득할 수 없던 A씨는 헌법재판소에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당했다는 겁니다.
그날 A씨의 하루부터 살펴볼까요. A씨는 오전 9시 45분께 카페에 들어서 친구와 음료를 마시다가, 40분쯤 뒤에 카페 한편에 방처럼 분리된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오후 3시께 카페를 떠났습니다.
문제는 A씨가 방 콘센트에 꽂혀있던 휴대폰 충전기를 자신의 것인 줄 알고 챙겨간 겁니다. 충전기의 진짜 주인은 B씨입니다. 전날에 카페를 이용한 뒤 충전기를 실수로 꽂아두고 갔거든요.
충전기를 잃어버린 B씨는 카페에 "내 충전기가 있느냐"고 전화를 해봅니다. 그리고 며칠 뒤, 폐쇄회로(CC)TV에 A씨가 충전기를 가져가는 장면이 있다는 답을 받죠. B씨는 A씨를 절도 혐의로 고소합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카페 영수증 명세 등을 토대로 수사를 벌입니다.
A씨의 항변은 이랬습니다. "진짜 내 것인 줄 알았다"는 겁니다. A씨는 카페에 도착해 줄곧 자신의 휴대전화 충전기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 자리로 옮길 때 자신의 충전기까지 함께 옮겨다 꽂아둔 것으로 착각했다는 겁니다.
B씨와 수사기관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A씨와 B씨의 휴대전화 충전 단자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A씨가 수사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기 전까지 약 한 달의 시간 동안 충전기를 카페에다 돌려놓지 않은 점 등도 들었습니다. 결국 A씨는 지난 3월 31일 제주지검으로부터 절도죄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습니다.
관련 법령은?
형법 제329조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돼 있습니다. 절도죄가 성립하려면 불법영득의 의사가 필요합니다. 물건 관리자를 배제하고 타인의 물건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이용하거나 처분하려는 마음이죠.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하면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경우,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A씨 역시 검찰 처분이라는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자신의 행복추구권이 침해당했다고 주장한 것이지요.
헌재 판단은?
헌재는 지난 29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A씨에 대한 기소유예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쟁점은 불법영득 의사였습니다. A씨는 정말 자기 것인 줄 알았을 수 있다는 거죠.
헌재는 A씨의 모습이 찍힌 CCTV부터 다시 살펴봤습니다. 방 자리에서 친구와 두시간쯤 이야기를 나누던 A씨는 잠시 바깥으로 나가는데요. 다시 들어오는 길에 이 충전기를 발견하고는 콘센트에서 빼내 소파에 올려둡니다. 그리고 두시간쯤 더 시간을 보내다 카페를 나서는 과정에서 이 충전기를 자연스럽게 챙기죠.
A씨가 방 자리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충전기를 빼서 가방에 넣었다고 본 경찰 판단과는 좀 다릅니다. 헌재는 A씨가 자신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면서 충전기를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착각해 콘센트에서 빼놓은 것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헌재는 A씨와 B씨 휴대전화 충전단자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두고 불법영득 의사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습니다. 휴대전화 충전기는 단자가 다르더라도 색깔이 같으면 혼동할 가능성이 있고, A씨가 충전기를 빼면서 단자를 따로 확인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 연락을 받기 전까지 충전기를 되돌려놓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 헌재는 "충전기는 전자기기보다 저가의 물품이고, 한 사람이 여러 개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으며, 분실하는 경우도 흔하지 않다"고 얘기합니다. 불법영득 의사를 인정할 중요한 근거는 될 수 없다는 겁니다.
헌재는 또 "모든 절도죄가 반드시 합리적·이성적 판단으로 저질러지는 게 아니기는 하지만, 의문이 있는 상황에서 A씨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면 수사기관이 불법영득 의사를 증명했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결국 수사기관이 수사에 미진했고 증거판단을 잘못했기 때문에, A씨의 기본권인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됐다는 결론입니다.
폰 충전기 하나 때문에 헌법재판소까지 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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