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배송 김치 택배, 냉장고 넣었다 형사 재판行.. 2심도 무죄 > 유머/이슈

출국 하루 전 집 앞으로 잘못 배송된 김치 택배의 포장을 뜯어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형사 재판까지 받게 된 40대 여성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아시아경제 3월1일자 출국 전 오배송된 김치택배… 냉장고 넣었다 형사 재판까지 [서초동 법썰] 기사 참조

20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2부(재판장 맹현무 부장판사)는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로 기소된 A씨(49·여)에게 최근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서울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 중인 A씨 지난해 7월1일 저녁 집 앞에 놓인 택배 박스를 발견했다. 앞서 그 집에 살았던 B씨(24·여)의 어머니가 딸의 주소지를 착각해 오배송한 택배였다. 박스엔 김치 600g과 마스크팩 6개가 들어 있었다.

다음날 해외로 출국할 예정이던 A씨는 애가 탔다. 택배 송장의 받는 사람란에 기재된 이름과 전화번호도 일부가 별표(*)로 처리돼 있었다. 그는 그릇들에 김치를 소분해 냉장고에 넣어뒀다.

B씨는 당일 오전 택배기사의 연락을 받고, 저녁 7시가 넘어 택배를 찾으러 갔다. A씨는 "상할까봐 냉장고에 넣어뒀다"며 김치통 하나를 줬다. B씨는 어머니와 통화하던 중 김치 일부와 마스크팩을 받지 못했단 점을 깨달았다. 다시 찾아가 항의하자, A씨는 마스크팩은 돌려주면서도 김치를 전부 돌려주진 않았다.

B씨의 신고로 A씨는 수사를 받게 됐다. A씨는 수사기관에 "개인 업무 중이라 (처음부터) 마스크팩을 주는 것을 잊었다. 일부 김치는 남의 그릇에 담겨 있어 (바로) 돌려주지 못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검찰은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를 적용해 A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면서 "A씨가 택배 우편물을 가질 생각으로 포장을 열어 가져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긴 한다"면서도 "A씨의 주장이 개연성이나 합리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B씨가 직접 찾아오기 전까진 연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택배기사도 배송 관련 연락을 준 적이 없었다"고도 부연했다.

검사가 항소했지만, 2심도 이 같은 판단이 옳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는 무더운 여름이었고, 식품이 들어있다고 적힌 택배였다"며 "다음날 해외로 출국해 오랜 기간 집을 비워야 하는 입장에서 내용물을 확인해 볼 필요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쉽게 상할 염려가 있는 음식물이라면 일단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하루 정도 주인이 찾아오길 기다려 돌려주거나, 또는 출국하기 직전까지 오지 않으면 할 수 없이 모두 음식물쓰레기 등으로 버리는 행동이 합리적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아울러 "타인의 물건이니까 그냥 방치해뒀다면, 적어도 피고인이 범죄자 취급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만에 하나 주인이 찾아가지 않아 내용물이 썩을 경우 주변 주민들이 입을 피해가 엄청날 것임은 자명했다"고 강조했다. "피고인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택배 주인을 찾아 돌려줄 의무는 없다"고도 했다.

"통상 택배 배송 과정에 비춰 택배 주인이 조만간 찾으러 올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행동을 두고 당연히 불법영득의 의사가 존재한다고 추론하기는 무리"라고 항소심 재판부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