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찌우거나 신체훼손하던 병역기피 수법, ‘안 보이는 질환’으로 진화[0]
조회:653추천:0등록날짜:2023년01월02일 11시46분
살 찌우거나 신체훼손하던 병역기피 수법, ‘안 보이는 질환’으로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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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을 고의로 피하기 위해 정신질환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을 꾸며내는 수법이 주류로 떠올랐다. 과거 신체훼손 등으로 눈에 보이는 면제 요건을 만든 것과 비교하면 더욱 교묘해진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대규모 병역비리 수사에서 핵심이 된 ‘뇌전증 위장’은 이런 추세의 ‘최신 버전’이라는 게 병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1일 검찰과 병무청이 ‘병역비리 합동수사팀’을 꾸려 뇌전증 위장 사례를 집중 수사 중인 가운데, 수사 대상자만 최소 70명에서 많게는 1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수사기관이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과거 간질로 불리던 뇌전증이 주요 병역비리 수법으로 떠오른 것은 질환이 눈에 잘 드러나지 않고, 혈압이나 혈당처럼 수치를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질환의 특성으로 주로 환자와 보호자의 말에 의존해 진단과 치료가 이뤄진다. 김존수 대한뇌전증학회 홍보이사는 “뇌전증 발작은 예측이 불가능해 대부분은 보호자가 환자의 발작 사실을 진술하고, 이에 따라 약을 조절하며 치료한다”고 말했다. 뇌파검사도 하지만 실제 뇌전증 환자의 절반 가량은 뇌파가 정상이다. 김 이사는 “뇌전증 전문의가 아니라면 환자가 가짜 발작 영상을 보여주며 거짓말을 하면 의사도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병무 전문인 감병기 행정사는 <한겨레>에 “신체훼손 등 병무청에서 여러 병역면탈 수법을 이미 알고 거짓을 구별하기 때문에 불법 행정사 등 브로커들이 정신질환 위장을 통해 병역면탈을 하려고 한다”며 “그 다음으로 발전한 수법이 뇌전증 위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뇌전증 허위 진단서로 병역 면제·감면해준 혐의를 받는 병역브로커 김아무개씨가 포털사이트 중개서비스에 올린 프로필. 네이버 엑스퍼트 갈무리허위 뇌전증 진단서를 발급한 의사가 브로커와 공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었다. 감병기 행정사는 “허위로 뇌전증 진단서를 써준 의사는 브로커랑 사전에 공모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질병을 확정하기까지 수많은 검진과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한 번 ‘쇼’를 했다고 뇌전증 진단서를 써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했다. 병무 전문 우지영 행정사도 “병역 대상자가 발작 증상을 보였고 응급실에도 실려간 적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면 ‘뇌전증이 절대 아니다’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나. 불법 브로커들이 이런 허점을 파고든 것 같다”고 말했다.
논란이 된 뇌전증처럼 ‘안 보이는 질환’인 정신질환 위장을 통한 병역면탈은 늘어나는 추세다. 병무청의 ‘2021년 병무통계연보’에 나온 병역면탈 적발 현황을 보면, 2021년 정신질환 위장이 29건으로 가장 많았는데, 2016년 8건, 2017년 14건, 2018년 7건, 2019년 11건, 2020년 26건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반면 2010년대 중반까지 적발된 손가락 절단, 고환 적출, 아토피 환부 자극 등 신체 고의 훼손은 2016년 2건 이후 한 건도 없었다. 고의 체중 조절은 2016년 18건에서 2018년 31건까지 늘었으나, 2020~2021년에는 각각 13건으로 줄었다. 고의 문신도 2020년 16건까지 늘었다가 지난해 4건으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병무청의 병역 판정 절차가 보다 엄격하게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병무청은 신체검사 결과 5~6급(전시근로역 및 면제) 판정을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만 한 차례 더 전원합의 심의를 거친다. 우지영 행정사는 “뇌전증처럼 판단하기 어려운 질병의 허점을 브로커들이 이용하고 있다. 병무청이 신체검사 결과에서 애매하다고 판단하는 질환 등에 대해선 (4급 이하 판정이라 하더라도) 더 많은 전문가들을 포함해 2~3차에 걸쳐 다시 심의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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