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 봉산, 울창한 숲 베고 편백나무로…환경단체 반발[0]
조회:478추천:0등록날짜:2023년04월04일 10시46분
은평 봉산, 울창한 숲 베고 편백나무로…환경단체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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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찾은 서울 은평구 신사동 산93-8 봉산 비탈면에선 지름이 한뼘에서 두뼘 정도 되는 나무 그루터기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밑동의 굵기와 분포 상태로 미뤄, 베어내지 않았다면 여름철엔 숲이 제법 울창할 것 같았다. 그루터기 사이로 성인 허리 높이가 채 되지 않는 어린 편백나무들이 버팀목에 의지해 간신히 서 있었다. 이 일대는 무참히 잘려나간 나무 밑동과 아무렇게나 방치된 줄기, 이제 막 식재한 편백 묘목이 뒤섞인 모습이었다. 은평구는 지난 2월 말 봉산 내 편백나무숲 구간을 확장한다는 명분으로 1㏊ 안팎의 산림을 벌목하고, 지난달 말부터 편백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문제는 벌목된 나무들이 산에 자생하던 멀쩡한 나무들이었단 점이다. 지역 환경단체 연합기구인 기후행동은평전환연대는 지난달 14일 자료를 내어 “3월1일과 3일 이틀에 걸쳐 현장을 조사한 결과, 참나무류 100여그루, 팥배나무 80여그루, 아까시나무 72그루, 기타 소나무, 잣나무, 일본잎갈나무, 벚나무류, 밤나무, 단풍나무류, 리기다소나무 등 55그루를 포함해 306그루가 무참히 잘려나간 것이 확인됐다”며 “나무 수령은 10살부터 56살까지 다양했다. 참나무와 팥배나무는 평균 30살 이상 큰 나무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서울 은평구 봉산 일대에 나무를 베고 새로 편백나무를 심은 모습. 손지민 기자은평구는 2014년부터 봉산 일대에 편백나무숲을 조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약 1만2400그루가 식재됐다. 은평구가 지난달 발주한 ‘봉산 편백나무 힐링숲 기본계획 수립 용역’ 과업지시서를 보면, 구는 편백나무숲을 추가로 조성하고 서울 둘레길 등과 연계해 ‘내를건너숲길 문화거리’ 등 지역 문화관광자원으로 육성하려고 한다. 식생 보전이나 종다양성 확보보다는 인위적 시설물 조성과 관광자원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셈이다.
봉산 일대는 대규모 팥배나무 군집이 발달해 2007년 서울시에서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서울시는 생물다양성이 풍부해 생태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인위적 훼손, 오염 등으로부터 보전·관리하기 위해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편백나무숲을 조성하는 지역은 생태경관보전지역과 근접한 구간이다. 서울시는 2018년 펴낸 ‘봉산 생태경관보전지역 정밀 변화 관찰 연구보고서’에서 이 지역에 팥배나무가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있다며 생태경관보전지역 확대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 은평구 봉산 일대에 잘린 나무 잔해가 방치된 모습. 손지민 기자은평구는 산림청이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산림 부문 추진전략’에 따라 숲을 가꾸고 있다는 입장이다. 은평구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나이가 있는 ‘4영급’ 이상인 나무들이 방치되면서 숲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며 “수종 갱신과 영급 개선으로 탄소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편백숲을 조성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영급’은 31∼40년생 사이의 나무를 말한다.
하지만 이런 은평구의 설명은 산림청의 방침과도 어긋난다. 산림청은 2021년 산림분야 탄소중립 전략에서 기존의 ‘벌목 기준연령 하향’ 등의 내용을 삭제하고 ‘산림의 순환경영과 보전·복원’으로 선회한 바 있다. 민성환 생태보전시민모임 대표는 “산림의 질을 개선한다며 숲에 서식하던 새들까지 한꺼번에 쫓아내버린 꼴”이라며 “원래의 자연림을 없애고 인공림을 만드는 것은 생태계의 질을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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