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이 수행하다 보면 신통력을 얻는경우가 있다던데[0]
조회:426추천:0등록날짜:2023년04월16일 10시36분
스님들이 수행하다 보면 신통력을 얻는경우가 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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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옴마니반메훔' 주력
나는 수월스님의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은 다음 주력을 하여 업장소멸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혼자 생각에 천수다라니는 너무 긴 것 같아 옴마니만메훔 육자주를 선택했습니다. 곁의 어른들께 상의도 하지 않고 나 혼자 옴마니반메훔을 선택한 다음 사람들이 없으면 소리내어 외웠고 사람들이 있으면 속으로만 했습니다.
절 마당을 거닐든 밭에 가든 예불하러 가든 밥을 먹든 경전공부를 하는 틈틈이 나는 언제나 육자주를 놓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얼마를 계속하였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겨울에 접어들 무렵이었습니다.
해인사 강원인 궁현당에서 예불을 마치고 속으로 육자주를 외우며 각 법당 예불을 하기 위해 대웅전 축대 위에 올라서서 극락전 쪽을 바라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사라진 듯하였고 갑자기 눈앞의 모든 것도 사라졌습니다.
앞에 있던 산도 없고 옆의 대적광전, 밑의 마당,뒤쪽의 건물 모두가 없어지고 수천만리의 평평한 평지가 펼쳐졌습니다. 약간 옅은 황금색을 띤 누르스름한 대지가 수천만리 펼쳐져 있는데, 그 대지의 끄트머리에 옴마니반메훔 여섯 글자가 범자로 해돋이처럼 빨갛게 땅에서 솟아나 공중에 똑바로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서 있다는 생각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해처럼 빨갛게 솟아 있는 여 섯 글자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굉장히 긴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때 밑에서 올라온 도반스님이 내 등을 두드렸습니다.
"여기서 뭐하고 서 있니? 빨리 예불하러 가야지"
순간 나는 번쩍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깜깜해지더니 산과 건물과 마당이 다시 확인되었습니다.그 시간이 나한테는 한없이 긴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실제로는 불과 5분도 못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는 일상생활에 이상한 일들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도반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 혼자 엉뚱한 짓을 더러 하였습니다. 그 무렵에는 절에서 향로에 불을 담아 사용했습니다. 향나무 열매를 따서 말려두거나 뿔나무를 썰어 말려두었다가 그것을 향으로 사용했습니다.
하루 세 차례 곧 아침예불 때와 사시마지 때와 저녁 예불에 불을 담아 써야 하기 때문에 부전 스님이 저녁에 방에 있는 화로에 불을 담아 놓으면 그 불이 하루종일 가거나 적어도 다음날 새벽까지는 갔습니다.
한번은 우연히 향로에 불을 담으러 부엌에 갔다가 장난이 벌어졌습니다. 공양주 스님이 큰 목탁을 탁탁치며 밥물이 넘었다 불을 끄집어 내어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나는 밤새도록 쓸 벌건 숯불을 화로에 담고 난 다음 느닷없이 그 숯불을 손으로 만져봤습니다.
벌건 숯불을 만지고 그 숯불을 손에 드니 곁에 있던 공양주와 어른 들이 놀라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불이 조금도 뜨겁지 않았습니다. 손도 전혀 데지를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른들이 놀라고 꾸지람을 하셨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진 다음 나는 나에게 다른 어떤 기운의 충동 때문에 가만히 있지를 못했습니다.
죄스럽지만 생각만 나면 해인사 대적광전 지붕을 수시로 올라갔습니다. 6.25사변 직적인 그때는 경제 사정이 어려워 평소에는 고무신도 운동화도 신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멀리 출타를 할 때는 고무신을 신었지만 집안에 있을 때는 타이어 찌꺼기로 만들어 발가락만 끼우는 게다짝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 게다를 신고 시도 때도 없이 스르르 방을 빠져나가 발로 땅을 한번 툭 치면 나의 몸은 이미 대적광전지붕 위에 올라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게다를 신은 채로 지붕 위와 용마루 위를 평지처럼 밟고 뛰어 다녔습니다. 보통사람은 맨발로 다녀도 경사가 급해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지붕 위를 게다를 신고 평지처럼 왔다갔다하고 막 뛰어다녔습니다.
나와 같이 있던 도반들은 이러한 나를 보고 밑에서 소리쳤습니다.
"야, 저것 봐라 미쳤다. 저것 봐라 미쳤어"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가야산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가야산 중허리의 마애불까지 순식간에 다녀왔고 가야산 꼭대기와 매화산과 미륵봉 등을 한 바퀴 도는데 불과 10분 내지 15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축지법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훌쩍 뛰어올라 첫 봉우리만 나의 발에 닿으면 전체 산봉우리가 다 나의 발 밑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 산봉우리 밟고 한번 뛰어 저 산봉우리 밟으며 가야면 일대를, 가야산 전체를 다 둘러보며 다녔습니다.
또 한번은 마애불 근처로 가서 집채만한 바위를 밀어보았더니 바위가 그냥 밀려갔고 주먹을 불끈 쥐고 바위를 쳤더니 마치 물 속으로 들어가듯 팔이 바위 속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이상한 일들을 경험하면서 한편으로 나는 나 자신이 점점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원만하게 지냈는데 나 자신이 날카로워지면서 거슬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자꾸만 톡톡 쏘아붙였습니다.
나 자신이 어른들께 그 당시의 이상한 기운에 대해 소상하게 말씀을 드리지 않았고 어른들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유심히 살피지 않고 지내다가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 고비를 그렇게 넘기고 있었다. 까딱하면 마구니나 외도의 차원에 도착할 뻔했습니다.
다행히 나 자신이 신경이 자꾸 날카로워지는 것을 느꼈고 어른들한테도 마구 대하였으며, 곁에서 저 아이 좀 이상해졌다 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여 육자주를 그만두었습니다. 6.25사변 직전까지 그런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가 해인사 강원에 있을 때였습니다.
2. 능엄주력
해인사 강원에 있을 무렵 '옴 마니 반메 훔' 육자주를 외워 식광의 고비를 체험하면서 강원에서 배우는 글 공부는 깊어졌지만 나가 아닌듯한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육자주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6.25사변을 맞았습니다. 빨치산의 점령으로 해인사에도 큰 사건이 생겼고 은사이신 고봉 스님도 모함을 받아 수난을 당하는 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여러 고비를 넘기며 마무리를 다한 다음 나는 오대산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전란 때문에 오대산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청화 보경사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나는 보경사 서운암에서 능엄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스님들이 아침 시간에 지금 많은 불자들이 하고 있는 능엄경의 대능엄주를 하지 않고 대능엄주의 마지막 부분의 70여자로 된 아주 짧은 것을 외웠습니다. 이 능엄주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무 대불정여래 밀인 수증요의 제보살만행 수능엄신주 (다냐타 옴 아나례 비사제 비라 바아라 다리 반다 반다니 바아라 바니반 호움 다로옹박 사바하) 나도 백일 목표로 이 능엄주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식사는 일체의 부식 없이 소금간만으로 밥을 먹었는데 한 2주쯤 지나자 밥 생각만 하 여도 구역질이 날 정도였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의 백일기도였으므로 신체적으로 너무 무리를 주는 것은 좋지않겠다고 판단하여 법당에서 기도하는 시간을 하루 8시간으로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주로 보행을 하면서 능엄주를 마음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60일을 넘기고 70일쯤 되었을 때부터 심한 장난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녘이 되어 눈을 뜨면 '오늘 몇시에 어디에 사는 누가 온다'라는 생각이 드는 데 정말 그때가 되면 그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며칠이 더 지나자 가만히 방에 앉아 이십리 삼십리 밖의 신도들 집이 다 보이는 것입니다. 공부가 완전히 마무리된 단계에서 생긴 일이 아니라 공부를 지어나가는 과정에 이 장난이 붙은 것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생각만 일으키면 내 눈 앞의 텔레비젼을 보듯이 동네의 모든 집이 보이고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도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밥상위의 반찬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가 낱낱이 보였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어느날 아침,어머니가 아이와 다투는 것이 다 보이고 다 들렸습니다.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오늘까지 월사금을 가져가지 않으면 선생님이 혼을 낸댔어, 빨리 줘"
"오늘 구해 놓을테니 내일 가져가거라"
"오늘 가져가지 않으면 혼나, 학교가지 않을거야"
"그러지 말고 가거라"
"싫어"
"이 놈의 자식이!"
이렇게 모든 내용이 생생하게 보이고 표정까지 또렷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어떤 사람이 내 앞에 서면 그 사람의 몸이 마치 투명체처럼 다 들여다 보이고, 뼈 마디마디 까지 그대로 보였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 아무 것도 못 느끼고 있건만, 병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까지 진행 되었으며 얼마 후면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아픈 상태가 벌어진다는 것이 내 눈에는 다 읽혀졌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아픈 사람에게 내 생각대로 앞에 있는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주면서 '이것을 씹어서 잡수시라'든지 이파리를 따서 '이걸 달여 먹으면 낫는다'고 하면 약도 아닌데 분명히 그 사람이 병이 낫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기 짝이 없는 그와 같은 장난이 붙는 시간이 이어지자 호기심이 자꾸만 일어났고, 마지막 20여일은 기도를 하였으나 제대로 집중을 하지 않고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 뒤 그 해 겨울을 보경사에서 나고, 이듬해인 덕숭산 정혜사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도를 깨달은 금봉 노스님이 계셨고, 그때 나는 도인이라 하고 도를 통한다고 하는 것을 내가 체험한 것인가?'하는 헛생각이 들어 그 일들을 노스님께 자랑처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금봉스님은 대뜸 호통부터 치셨습니다.
"이 죽을놈! 마구니의 자식새끼! 중노릇을 한게 아니고 마구니 노릇을 했구나 너 같은 놈은 당장 죽여버려야 된다. 너 같은 놈 살려놓으면 여러 사람을 망쳐놓는다. 당장 주문을 버리든지 이 자리에서 죽든지 택해라"
그날부터 스님께서는 일체 바깥 출입을 못하게 하셨고, 곁에 두고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나 또한 의식적으로 능엄주를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무의식 중에 능엄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노스님께서
"지금 뭐하노?" 하시면, 깜짝 놀라며 "아무 것도 안합니다" 고 답하였지만 나도 모르게 능엄주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금봉 노스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참말로 아무 것도 안하나? 그거 뗄려면 죽기보다 더 힘이 들거다"
정말 그랬습니다. 막상 눈 앞에서 전개되는 신통한 일에 호기심이 붙고 재미가 붙은 상태에서는 뗄려고 해도 참으로 떼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노스님의 '죽기 보다 더 힘들거다' 하시는 말씀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실로 나는 이때의 여러가지 체험을 통하여 공부 초기에는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말처럼 눈밝은 어들들께 자꾸 물어야 한다는 것과 어른들 또한 젊은 사람을 관찰하면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떤 차원까지 갔는가를 잘 살펴 다독거려 주셔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나는 근래에 와서 신도님이나 초심자들에게 자주 부탁을 드립니다.
"공부 자리가 완전히 잡힐 때까지 될 수 있으면 어른들에게 자주 물어라 자주 물어야 길을 그르치지 않는다. 잘못하면 그르치게 된다"
나 또한 내가 체험한 몇가지를 어른들께 말씀드렸더니 "식광까지는 체험했구나 분명히 식광은 쳐다봤다" 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식광이라는 그 자체가 아직까지 공부 중간입니다. 미처 공부의 한 70% 정도도 못간 고비에서 겪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식광의 체험! 흔히 제6식이라고 하는 의식이 분명하고 또렷이 살아있는 상태에서는 그와 같은 세계를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수행을 하다가 의식이 떨어져버리는 상태에 이르면 식광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곧 안이비설신의 5근과 관련된 전5식의 파도를 넘고 제6식과 제7식의 파도도 넘고 제8식의 파도를 넘어가면서 식광의 고비가 터지는 것입니다.
나의 체험으로 보면 수행자가 전 5식의 파도 곧 눈 앞의 모든 것이 흔들리는 고비가 넘어가고 나면 좀 조용해집니다. 그러다가 다시 제6식의 파도가 나타나고 그 파도를 극복하고 나면 제7식의 세계가 나타나며, 그때 전생이 보이게 됩니다. 제 6식의 파도를 넘어 제 7식의 파도에 가면 전생이야기가 눈에 비치고 전생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7식의 파도를 다 넘어서서 제8식의 파도를 넘다가 보면 식광이 세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식광의 세계 가지고는 참된 공부가 이루어졌다고 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행과 마음가짐이 점점 더 익숙해져야 합니다. 24시간 언제나 화두나 주력이나 염불 속에서 마음이 흩어지지 않는 공부를 계속해야 합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공부를 짓다가 잘못 되어 완전히 정신병자처럼 된 스님도 있고 약간 정신이 이상해진 언행을 하는 사람도 더러 만납니다.
자기 나름대로는 다 끝까지 도착했다고 큰 소리를 치는 분들 중에서도 '아직 멀었습니다, 스님. 그것 가지고 끝까지 갔다고 자부하면 완전히 옆길로 가버립니다' 라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나는 '칼날이 넘을 아슬아슬한 고비에서 칼날을 넘지 않고 중단했다'는 것으로도 천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나는 식광의 고비까지 도착하면서 옛 어른들이 신통이라고 하는 그런 차원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만 수행과 정중에 나타나는 이러한 신통은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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